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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도지정문화유산

이경석선생묘 이경석선생묘

이경석선생묘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은 인조에서 효종, 현종의 3대에 걸쳐 나라에 공헌한 재상이었다. 본관은 전주, 자는 상보(尙輔), 호는 쌍계(雙磎) 또는 백헌(白軒)이다. 아버지는 유간(惟侃)이며 어머니는 개성고씨 대호군 고한량(高漢良)의 딸이다. 이경석은 1613(광해군 5)년 진사가 되고 1617년 증광별시에 급제하였으나, 이듬해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비 상소에 가담하지 않아 삭적되었다. 1623(인조 1)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에 등용되었다. 이괄(李适)의 난 때 왕을 호종하였으며, 1627(인조 5)년 정묘호란 때는 체찰사 장면(張晩)의 종사관으로서 강원도 군사 모집과 군량미 조달에 힘썼다. 1636년 병자호란 때는 대사헌, 부제학으로서 인조를 남한산성으로 호종하고, 이듬해 삼전도비(三田渡碑)의 비문을 찬진(撰進)하였다. 1642(인조 20)년 심양에서 돌아와 대사헌, 좌의정 등을 거쳐 1649(효종 1)년에 영의정에 올라 효종의 북벌정책에 참여하였다. 1668(현종 9)년에 궤장을 하사받았다. 이와 관련한 사궤장과 <사궤장연회도첩> 이 경기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930호로 지정되었다. 이경석은 벼슬에서 물러난 후 성남의 판교로 옮겨 살다가, 뒤에 지금의 석운동에서 만년을 보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방산서원(方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백헌집(白軒集)』등 유집 50여 권이 있다.

  • 지정종목

    경기도 기념물

  • 지정일자

    1985.9.20

  • 위치

    성남시 분당구 석운동 50-7

한산이씨묘역 한산이씨묘역

한산이씨묘역

한산이씨 묘역은 성남시 수내동 중앙공원 내에 편입되어 있다. 묘역은 조선 중기부터 후기에 걸쳐 해발 약 70m의 영장산(靈長山) 일대에 조성되었는데, 전체 규모는 약 287,000㎡에 이른다. 정남향 묘역에는 토정 이지함의 조부로 봉화현감을 지낸 한원군 이장윤(李長潤, 1455~1528)의 묘를 비롯하여 한성군 이질, 한평군 이지숙, 아천군 이증(李增, 1525∼1600)의 묘가 위치해 있고, 동남향에는 아천군의 아들로 임진왜란 때 순절한 충신 병조좌랑 이경류(李慶流, 1564~1592)와 정부인 횡성조씨, 그의 애마총, 김제군수 이정룡(李廷龍, 1629~1689)의 묘가 자리하고 있다. 묘역 아래에는 의간공(懿簡公) 이증의 부조묘(不祧廟)가 건립되어 있으며, 중앙공원 탄천변의 비각에는 1715(숙종 41)년 세워진 이증 신도비와 1728(영조 4)년에 세워진 이정룡 신도비가 있다. 그 옆에는 이경류의 충신정려문(忠臣旌閭門)과 1728(영조 4)년에 건립한 한산이씨삼세유사비(韓山李氏三世遺事碑)가 나란히 서 있다. 이중 삼세유사비의 비문은 1722(경종 2)년 후손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이 지었고, 규모는 80X26X198cm이다. 또한 세장묘역 내에는 현풍현감 이확(李穫, 1583~1658)의 사위인 홍수원(洪晬元, 1611~1637)의 묘가 있는데, 이는 처가의 선산에도 매장될 수 있었던 당시의 풍습을 엿볼 수 있으며, 임진왜란 때 상주에서 순절한 병조좌랑 이경류의 말 무덤 같은 이색적인 유적도 있다. 한편 세장 묘역의 외곽에는 경계 표시를 위한 한산이씨입수비(韓山李氏入首碑) 1기와 ‘한산이씨세장지산(韓山李氏世葬之山)’이라 쓰여 진 표석 2기를 세워 놓았다. 이 역시 다른 세장 묘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예이다. 한산이씨 묘역은 비교적 원형이 잘 보전되어 있어 당대를 대표할 만한 사대부의 세장 묘역이라 평가된다. 경기도에서는 분당 신도시 개발 당시인 1989년 한산이씨 묘역의 보존을 결정하고, 경기경기도 기념물로 일괄 지정하여 공원으로 조성하여 보존하고 있다.

  • 지정종목

    경기도 기념물

  • 지정일자

    1989.12.29

  • 위치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550(중앙공원 내)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

전주이씨 태안군파 묘역에는 조선 전기의 문신 이팽수(李彭壽, 1520~미상)와 그의 아들 이강(李橿, 1551~1585), 증손인 이경인(李敬仁, 1575~1642)과 생몰년 미상의 이석명 등 4기의 묘소가 있다. 묘역은 전주이씨 태안군파가 조선 전·후기에 세거하였던 정자동 불곡산(佛谷山) 자락의 구릉에 위치한다. 이팽수 묘는 원래 분당구 정자동 산11-1에 있었으나 분당 신도시 개발로 인해 1991년 발굴 조사를 거쳐 정자동 34-4(황새울로132번길 32)로 이장하였다. 아래에 아들 이강 묘가 있다. 이경인 묘는 정자동 산 33-1에 위치하고 있다. 묘향(墓向)은 각 묘소가 안장되어 있는 지형에 따라 정서향, 남서향, 서향을 하고 있다. 태안군 이팽수는 성종의 제12남인 무산군의 다섯째 아들로 임진왜란 때 왕을 호위한 공을 인정받아 호성공신에 봉해졌다. 그의 묘는 부인 안산김씨(安山金氏)와의 합장묘로 쌍분이다. 쌍분의 중앙 앞에 월두형(月頭形) 묘비·상석·향로석이 있고, 상석의 좌·우에는 문인석이 배열되어 있다. 묘비는 1597년(선조 30)에 건립되었다. 묘표의 규모는 비신이 69X18X154cm, 기태가 85X53X34cm이다. 쌍분 모두 회곽묘(灰槨墓)에 외관 및 내관을 사용한 이중관의 구조였으며, 태안군의 묘에서 백자 명기 10점과 부인의 묘에서 청화백자 묘지석 7매, 백자 명기 2점이 출토되었다.

  • 지정종목

    경기도 기념물

  • 지정일자

    1989.12.29

  • 위치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산33-1

둔촌 이집 묘역 둔촌 이집 묘역

둔촌 이집 묘역

이집(李集, 1327~1387)은 고려 후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광주(廣州), 초명은 원령(元齡), 자는 성노(成老), 호연(浩然), 호는 묵암자(墨岩子), 둔촌(遁村)이다. 이당(李唐)의 아들로 정몽주(鄭夢周), 이색(李穡), 이숭인(李崇仁) 등과 교유했다. 1347(충목왕 3)년 과거에 급제하였고, 1368(공민왕 17)년 신돈의 비행을 비판하고 장차 화가 미칠 것을 예견해 아버지를 업고 도망하여 영천(永川)에서 은거하였다. 1371(공민왕 20)년 신돈이 역모로 주살 된 후, 옛집인 송경(松京)의 수양산(龍首山) 아래 현화리(玄化里)에 돌아왔다. 이어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 천령현(川寧縣)에서 독서와 농경으로 세월을 보냈다. 이때 시편신립(詩篇新粒)에 대한 질문서를 보내 당시의 문사(文士)들을 경탄케 하였다. 1669(현종 10)년에 건립한 광주(강동구 암사동)의 구암서원(龜岩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유고로 『둔촌유고(遁村遺稿)』가 있다.

  • 지정종목

    경기도 기념물

  • 지정일자

    2008.5.26

  • 위치

    성남시 중원구 둔촌대로 320

수내동가옥 수내동가옥

수내동가옥

수내동 가옥은 분당 신도시 개발 이전, 이곳에 세거하였던 한산이씨(韓山李氏)의 살림집 중 한 채로 이택구가 거주하였던 집이다. 과거 수내동 지역은 선산 안쪽에 약 70호 가량이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며, 그 중 한산이씨는 30여 호 가량 되는 집성촌이었다. 현재는 분당지구 개발로 인하여 철거되고 이 집만 남았다. 이 가옥의 정확한 건립 연대 및 연혁은 파악할 수 없으나 이 가옥에 살았던 이택구씨의 증조부가 이곳으로 이사한 후 4대째 거주한 것으로 미루어 대략 150-200년 전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 지정종목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89.12.29

  • 위치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 550(중앙공원 내)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

청주한씨 문정공파 묘역 신도비

분당구 율동 도랫말에 관찰사 한혜(韓惠, 1403~1431)의 아들 문정공 한계희(韓繼禧, 1423~1482)의 후손이 최초로 정착하였다. 한계희의 묘를 분당저수지 위쪽에 쓰고 이 일대를 사패지(賜牌地)로 받고 그 후손이 세거하면서 ‘한씨촌’을 형성하였다. 한계희는 조선 초 기내훈구파에 속하는 유학자로 시호는 문정이다. 우승지, 좌승지, 공조참판, 이조참판, 이조판서, 좌찬성을 역임하였고 특히 세조의 신임을 받았다. 최항 등과 함께 『경국대전(經國大典)』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1447(성종 8)년 『의방유취(醫方類聚)』 간행을 주관하였다. 그는 아들 여섯을 두었는데, 한사문(韓士文, 1446~1507)은 시호는 공간이며 대사헌, 병조참판, 공조참판, 공조판서, 함경도관찰사 등을 역임하였고 중종반정에 공을 세워 서천군에 봉해졌고, 한사무(韓士武, 1452~1482)는 한성판관, 한사신(韓士信)은 삼등현령, 한사개(韓士介, 1453~1521)는 시호가 영흥이며 영흥부사와 해주, 광주, 진주 등의 목사를 역임하였다.

  • 지정종목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1994.4.20

  • 위치

    성남시 분당구 율동 산2-11(율동공원 내)

풍산군 이종린 묘역 풍산군 이종린 묘역

풍산군 이종린 묘역

풍산군(豊山君) 이종린(李宗麟, 1538~1611)은 중종(中宗)의 손자이며 덕양군(德陽君) 이기(李岐, 1524~1581)의 장남이다. 1581년 덕양군이 돌아가자 관례에 따라 정경(正卿)의 품계에 올랐으며, 임진왜란 당시 어가(御駕)를 호종하였다. 1607년 종1품 가덕대부(嘉德大夫)에 제수되고 1610년에는 소덕대부(昭德大夫)에 올라 왕실 종친부의 일을 관장하였고 사옹원제조와 오위도총부 도총관을 겸임하였다. 일반 사대부의 봉분이 통상 열두 폭의 병풍석을 두르고 문인석에 오량관(五粱冠)을 씌운 반면, 풍산군의 봉분은 큰 받침돌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팔 폭의 병풍석을 둘렀으며 문인석에도 칠량관(七粱冠)을 씌우는 등 왕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제왕의 예에 따라 매장한 특징이 있다.

  • 지정종목

    경기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자

    2005.1.28

  • 위치

    성남시 분당구 하산운동 264-5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

성남 봉국사 대광명전

봉국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말사(末寺)로 영장산(靈長山) 서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1028(현종 19)년에 창건하였으며, 그 뒤 폐허가 된 것을 1395(태조 4)년 태조의 명에 의해 담화(曇華)가 중수하였다. 1674(현종 15)년에는 현종(顯宗, 1659~1674)의 딸 명혜(明惠)와 명선(明善)의 명복을 빌기 위해 공주의 능 인근에 있던 이 절을 중창하게 하였는데, 당시의 역사를 맡은 승려는 금강산의 일축존자(日竺尊者)였으며 중창 후 ‘봉국사’라고 명명하였다. 1924년 두창(斗昌)이 중수하였고, 1932년에는 주지 춘성(春城)이 서울 삼청동에 이 절의 부속암자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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